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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신기한이야기

마귀를 죽인 중국 고승 반초동(潘楚桐) : 130명의 일본인을 멸하다

by 미스터리TV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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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를 죽인 중국 고승 반초동(潘楚桐) : 130명의 일본인을 멸하다

 

 

 

上马杀贼,下马学佛。

(말에 오르면 악인을 죽이고, 말에서 내리면 불경을 배운다)

- 저우언라이(周恩来) 중국 총리 -

 

 

마귀를 죽인 중국 고승 반초동(潘楚桐) : 130명의 일본인을 멸하다

 

 

 

◆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가 극찬한

중국 유명 고승 반초동(潘楚桐), 거찬법사(巨赞法师) 이야기 ◆

 

 

 

항일전쟁 시기에 일본인들이 침입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르자, 거찬법사는 "입세(入世 ; 세상에 들어가다)"하여 항일 전쟁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한 제자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불문에 들어온 이상, 세상과 싸우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불교는 자비를 베풀어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에 거찬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장왕 보살님은 (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누가 지옥에 들어가겠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인들이 저지르고 다니는 악행을 보면, 이미 인간성이 전혀 남아있지 않으니,

그것은 사실상 인간 세상의 마귀입니다.

만약 마귀를 죽여 지옥에 간다면, 저는 창생들을 위해서 지옥에 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무간지옥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그런 큰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승보살의 정신이다. 

 

 

 

 

 

◆ 거찬법사의 어린 시절

 

 

반초동(潘楚桐), 거찬법사는 1908년에 중국 장쑤성에서 태어났으며, 1931년 항저우에 있는 영은사(灵隐寺)에서 출가하였다. 법명은 계(戒)이고, 자는 혜(慧)였으나, 후에 거찬(巨赞)으로 개명하였다. 

 

반초동은 어린 시절 서당에 다니며 전통문화교육을 받았고, 1927년 장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상해대하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반초동은 애국운동에 참여하며, 급진혁명당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고, 졸업도 하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장인(江阴)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동시에 민주화운동에 종사하였다. 

 

 

반초동은 불교 신자였던 모친의 영향을 받아 불교에 전념하였다. 

 

1927년 여름방학 기간에 상주에 있는 청량사에서 출가를 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고, 1929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낙향한 뒤 항저우에 있는 영은사에서 불법을 닦으며, 태허대사(太虚大师)를 만나게 되었다.   

 

 

반초동은 불교개혁에 대한 염원을 담은 <출가 지원서>를 작성하였는데, 그것이 태허대사를 감동시켜 1931년에 영은사에서 정식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거찬법사(반초동)는 불법을 닦으면서도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중생을 구제하는데 힘썼고, 전국 각지의 불교학원에서 사람들에게 불법을 가르쳤다. 

 

 

 

마귀를 죽인 중국 고승 반초동(潘楚桐) : 130명의 일본인을 멸하다

 

 

 

◆ 거찬대사의 항일운동 참전

 

1931년 918사변 이후 일본군이 중국 동북을 침공했고, 1937년 77 사변 이후 일본군은 중국을 전면 침공해 식민지로 삼고 중국을 병합하려고 하였다.   

 

일본군이 발이 닿는 곳마다 그들의 만행으로 수많은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수억 명의 사람들이 무참히 살육당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을 잃었고, 모든 사람들이 일본군에게 피맺힌 원한을 품게 되었다. 

 

거찬대사는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려고 다녔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중생들의 고통뿐이었다. 

 

 

 

 

마귀가 나타났으니, 일반 중생들의 살길은 어디있단 말인가? 

부처는, 불법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거찬대사는 고심했지만,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중국 정부가 마귀같은 악질 일본인들에게서 중생들을 구제해 주기를 기대했으나, 중국 정부는 일본과의 전면전에서 패하고 또 패하였다. 

 

거찬대사가 후난에서 불법을 설파할 때, 정부 고위층들의 소극적인 항전 행위에 대해 몇 마디 비판을 하였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사형 선고를 받았었다. 후에 다행히 석방되긴 하였으나, 구타를 당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항일전쟁에서 무능력했으나, 백성을 탄압하는 데는 거침이 없었다. 

 

 

 

 

 

석방된 거찬대사는 후난성 헝산(南岳)에 있는 복엄사(福严寺)에 가게 되었고, 그는 드디어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国民政府连自己都无法‘超度’,怎能杀死日军魔王,造福苍生呢?

世上根本没有救世主,劳苦大众只能自己救自己!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정부가 어찌하여 악질 일본군 마왕을 죽이고, 백성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세상엔 구세주가 없으니, 고통받는 백성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는 수밖에 없구나!"  

 

 

天下兴亡,匹夫有责!

 

천하의 흥망은,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따라서 거찬대사는 '세상에 들어가 마귀(일본인)를 죽이기(入世杀魔)'로 결정한다.

 

 

그 후 제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종교인들을 적극 동원하여 항일 활동에 나섰고, 고통받는 중생들과 단결하여 마귀(일본인)를 죽이는 것이 바로 중생을 구제하는 진정한 "구세주"가 되는 것임을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마귀를 죽인 중국 고승 반초동(潘楚桐) : 130명의 일본인을 멸하다

 

 

 

거찬대사는 중공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섭검영(叶剑英)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남악불교 구난협회'를 조직하였다.

 

협회 창립 총회에서 섭검영은 "중생을 구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의 문을 두드리자"라고 하였고, 저우언라이는 "말에 오르면 악인을 죽이고, 말에서 내려오면 불법을 닦는다(上马杀贼,下马念佛)"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 여덟 글자는 빠르게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었고, 날이 갈수록 더욱 많은 불교인들과 도교인들이 항일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항일 전쟁에서 거찬대사의 위대함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적을 죽인 것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악질적인 일본군에 저항할 수 있도록 정신적 역량을 일깨워 주었다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死。很容易,从容赴死却很难!

 

죽는 것은 매우 쉽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지로 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마귀를 죽인 중국 고승 반초동(潘楚桐) : 130명의 일본인을 멸하다

 

 

 

◆ 狮子吼 (사자후)

 

거찬대사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항일 운동을 선전하는 간행물 《狮子吼 (사자후)》를 창간하였다.

 

 

사자는 동물의 왕으로, 불교에서는 지혜를 상징한다. 

"사자가 한 번 울면 백마리의 짐승들이 놀란다(狮子一吼百兽俱惊)"는 말이 있는데, 거찬대사는 사람들의 애국심과 자부심을 일깨워주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사자후'의 영향으로 항일 전쟁에 뛰어들어 마귀와 같은 패악질을 일삼는 일본군을 죽였고, 고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1944년, 일본군은 구이린(桂林)을 공격하였고, 곳곳에서 죽음의 연기가 피어났다. 

 

당시 거찬대사는 시골로 피신해 마을 사람들의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 승의를 벗고 흰 두루마기를 걸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일어나 항일 전쟁에 참여하라, 스스로 망국의 노예가 되려 하지 말라(起来抗争,不要甘愿做亡国奴)"는 말을 전하였다.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으로 옮기게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거찬대사의 고된 설득에도 마을 사람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군이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 돈을 주었고, 일본군이 식량을 내놓으라고 하면, 굶어 죽어가면서도 식량을 내놓았다. 

일본군이 노동을 시키면, 모욕을 당하면서 무거운 짐을 져야 했다.

 

모든 것은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악행은 끊임없었고, "여자"를 요구해도 사람들은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요구에 따르거나, 온 가족이 목을 매어 죽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런 참상들을 본 거찬대사는 <만약 우리가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면>이라는 민간에서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우리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적은 우리를 죽이고, 우리의 뼈를 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봐라, 이건 노예다!]"

 

 

마귀를 죽인 중국 고승 반초동(潘楚桐) : 130명의 일본인을 멸하다

 

 

살마수행(杀魔修行) 

: 마귀같은 일본인을 죽이는 수행  

 

 

 

살마수행(杀魔修行)을 결심한 거찬대사는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무기를 만들고, 마을 현지 수령들과 함께 매복하여 일본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악질 일본인들은 다른 마을을 소탕하기 위해 나섰는데, 거찬대사는 그 정보를 미리 입수하여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일본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산 어귀에 미리 매복한다. 

 

그날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미쳐 날뛰던 일본군들은 백성들이 감히 기습을 준비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날도 여전히 거들먹거리며 매복해 있는 진지에 들어섰다. 

 

거찬대사는 먼저 총을 쏴 일본군 지휘관을 말 아래로 추락시켰고, 곧이어 다른 사람들의 총격도 가해졌다. 

일본군은 손쓸 틈도 없이 괴멸되었고, 사상자가 절반에 달하게 되었다. 

 

 

거찬대사는 일본군들이 방어선을 세우지 못하도록 빠르게 큰 칼을 빼들고 앞장서서 일본군에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였고, 다른 사람들도 함성을 지르며 칼, 창, 호미, 낫, 도끼들을 들고 달려들었다. 

 

 

격전을 이어가면서 거찬대사의 흰 두루마기는 피로 물들었고, 결국 130여 명의 마귀 일본인들을 모두 소탕하였다. 

단 한 명의 일본인도 살아나가지 못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일본군도 그곳에 마귀를 죽이는 고승인 거찬대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백성들의 흰 옷 스님"으로 남게 되었다.

 

 

 

거찬대사의 지혜와 용맹함은 비할 바가 없었고, 문무를 겸비하고 있었으니, 이런 인재를 누가 아껴주지 않겠는가?

항일 전쟁을 해오면서 거찬대사가 남긴 업적들은 모두에게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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